간혹 그런 생각을 한다.

인간(을 포함한 생명)의 삶은 신에 도달하는 하나의 기회가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한다.

실존이란 신과 죽음 사이의 어딘가이다. 따라서 우리 인간에게는 이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사실 이 두 가지 가능성밖에 없다. 버나드 쇼의 비명(碑銘)처럼, 어영부영은 곧 죽음에 대한 묵인이다.

만약 죽음에 도달한다면 우리 인간의 역사는 무의미해질 것이다. 그것은 안타깝다. 윤회를 벗어나지 못한 중생의 말로가 아닌가. 시간은 처음으로 되돌아가 다시 한 번 누군가---또는 무엇인가에 기회를 줄 것이다. 그리고 그 존재는 인류의 시행착오를 다시금 겪게 되겠지. 비극적이다.

그렇다면 신에 도달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그것은 우리가 영원해지는 것이다. 우리의 모태인 우주보다 더욱 영원해지는 것이다. 우주가 스러져도 스러지지 않는 영원이 되는 것이다.

그 날이 오면 우리 인류는 모든 활동을 멈출 것이다. 어떤 행위도 없을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본질과의 일치이자 예정된 구원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유일신설보다는 다신설이 합리적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저 어떤 결론에 도달할 뿐, 그것이 예정된 결론은 아니리라. 우리에게는 여러 갈래의 길이 있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그 날이 오면 우리는 시공을 극복할 것이다. 우리 인류는 규칙이 될 것이다. 영원한 규칙이 되어, 새로운 우주의 모태가 될 것이다. 그렇게, 영원한 진보의 일부가 될 것이다. 새로운 우주에서 발생하는 생물은, 하나 더 복잡한 우주에서 살아가게 되겠지. 무슨 의미가 있을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한 걸음의 진보다.

그런데 그렇다면, 우리 우주의 규칙은, 이전 우주에서 벌어졌던 여러 역사의 결말인 것인가?

Loading Facebook Comments ...

Leave a Comment

No Trackbac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