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 형질주의(Characterism)란 무엇인가.

형질주의는 다위니즘에 기반한 정치적 주장이다.

형질주의적 관점에서, 우열과 강약은 오직 형질 보존성에 의해서만 판단된다. 예컨대 유리와 돌이 부딪쳐 유리가 깨졌을 경우, 유리는 형질을 잃어버렸고 돌은 지켰으므로 돌이 더 강하다고 판단한다. 그러나 이 두 물체가 어딘가에 부딪칠 확률이 0이라면, 유리와 돌은 똑같이 가장 강하다.

형질주의는 정치적 움직임을 통해 우리가 영구기관의 제작자가 되거나, 그 일부가 되게 하는 것을 제일 목표로 한다. 영구기관이란, 어떤 경우에도 보존되는 형질을 가진 존재다.

형질주의적 관점에서, 무생물과 생물과 사회의 본질적인 차이는 없다. 유일한 차이는 그 강약이다.

형질주의는 개인과 사회의 존재성을 인정하며, 개인의 주체성과 인간 사회의 필수성을 인정한다. 즉, 개인을 사회의 부속으로 보거나 사회를 개인의 도구로 보지 않는다.

형질주의는 자연과 구분되는 인간성을 부정한다. 즉 인간의 모든 활동은 자연스러운 활동이다. 도덕과 문명, 사회 역시 자연스러운 것이다. 인간의 사회는 스스로의 의지가 아닌, 언제부턴가 생겨난 영원 추구의 형질에 의해 진보해 왔다.

형질주의적 관점에서, 역사는 끝나지 않았고 끝이 임박하지도 않았다. 현 대의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는 이상적 영구기관에 비해 지나치게 불안정한 체계이므로, 언젠가 반드시 극복되어야 한다. 사회의 단위가 반드시 국가이거나 시장일 필요도 없으며, 심지어 사회의 구성이 인간이라는 명제 역시 의심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인식 속에 형질주의가 정치적 주장의 영역에 오른다.

어쩌면 헤겔의 천년왕국처럼 적절한 사회의 형태로 영구기관이 구성될 수도 있다. 그러나 영구기관이 사회일 필요는 없으며, 인간이 그 일부일 이유도 없다. 형질주의적 관점에서 중요한 것은, 영구기관이 우리네 삶의 맥락에서 이어지는 것이다.

우리가 형질주의자가 되어야 하는 이유는, 오직 형질 보존의 충족에 행복을 느끼도록 설계된 존재들만이 살아남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우리는 배고플 때 밥을 먹으면서 행복하다. 닥쳐오는 형질 소멸의 위기에서 한 걸음 멀어지기 때문이다. 영구기관에 형질 소멸의 위기는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근본적으로 행복하기 위해서는 영구기관을 꿈꾸는 것 이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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