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학 노트 - 규칙과 공략

규칙은 게임의 핵심적인 요소이고, 또 많은 게임학자들이 게임은 규칙의 집합이라고 언급하곤 한다. 이는 일견 맞아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플레이를 빼놓고 게임을 논하는 것은 마치 학생을 빼놓고 학교를 논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목적에 대한 통찰이 없는 분석은, 대상을 어떤 식으로든 율동하는 기계처럼 보이도록 왜곡할 뿐이다. 예컨대, '시는 단어들의 조합이다.'라는 문장은, 틀린 건 아니다. 그러나 '단어들의 조합'이라는 표현은 '시'가 무엇인지 설명하기에 지나치게 초라하다. 시는 단순히 단어들의 조합이 아닌 그 이상의 무언가이기 때문이다. 게임 역시 마찬가지이다. 게임은 단순히 규칙들의 조합이 아니다. 게임은 그 이상의 무언가다.

심지어 규칙이 완전히 같지만, 단순히 다른 외양으로 인해 완전히 다른 게임처럼 보이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 이 게임(들)은 상호 구분 가능한 두 개의 게임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예컨대, 1~9까지의 카드가 한 장씩 총 9장의 카드가 있고, 두 플레이어가 차례로 원하는 카드를 가져가다가, 숫자의 합이 15가 되는 3개의 카드를 모은 플레이어가 승리하는 게임을 생각해 보자. 마방진의 원리를 적용하면, 이 게임은 삼목 게임(틱택토, 참고링크)과 완전히 동일한 규칙을 가지는 게임임을 알 수 있다. 이 게임(들)을 우리는 상동(isomorphic) 게임으로 규정할 수 있다.(이 예시는 게임학자 야스퍼 율의 저서 ‘하프 리얼’의 pp 74-76에서 발췌.) 이 예시를 통해, 우리는 게임을 구분하는 기준이 그 형식공간을 지배하는 규칙이 아니라, 그 게임을 플레이하는 데에 필요로 하는 지식과 기술임을 알 수 있다. 즉, 게임의 본질은 규칙이 아닌 공략이다.

게임은 그 형성 과정도 규칙의 수립과는 거리가 있다. 실제로 게임의 가장 명확한 규칙이 수립되는 시기는, 게임이 집단적 놀이의 수단으로써 형성되고 플레이되기 시작하는 때가 아니라 놀이적 영역을 벗어나 진지한 대회가 열리기 시작할 때이다. 처음 형성된 게임에서, 규칙은 다소간 불명확한 상태로 남겨진다. 그러나 플레이어가 게임에서 취해야 할 핵심적인 행동(축구 : 손을 쓰지 않고 발만을 이용해 상대팀의 골에 공을 넣는 게임)은 게임 형성 이전부터 게임의 중심적 위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수많은 로컬 룰과 대회 룰의 수립 역시 이 핵심 행동을 얼마나 정확하고 정밀하게 평가할 수 있는지를 기준으로 이루어진다. 실제로 게임은 본능적 학습을 자극하도록 만들어진 장치이며, 그러므로 학습 내용-즉 공략-과 일대일 대응한다. 규칙이 게임에 대해 일대일 대응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일반적으로 같은 규칙에 대해 같은 공략을 적용할 수 있다고 간주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게임 규칙이 먼저 디자인되고 플레이어에 의해 알맞은 공략이 발굴된다는 통설은 사실이 아니다. 오히려 게임 규칙은 의도된 공략을 이끌어내기 위해 오랜 시간동안 축적되고 수정되어 온 제안서에 가깝다. 게임 규칙은 예술품처럼 누군가에 의해 수립되고 창조된 저작물이 아니라, 사회체계처럼 수많은 반복 수행과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도출된 결론이다. 이것은 개인 기예의 증명인 예술품과 게임(규칙)이 구분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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